"거리에 노숙자들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해야겠지요."
7일(현지시간) 뉴질랜드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라티머 광장에서 노숙인 120여 명에게 무료 급식을 마친 한인 택시 운전사 정신기(63) 씨가 밝힌 소망이다.
정 씨의 이날 봉사에는 아내 손현숙 씨와 아들도 동참했다. 또 도우미 10여 명도 거들었다. 이들은 줄지어 늘어선 노숙인들에게 소시지, 식빵, 볶음밥, 감자 샐러드, 스시, 수프, 머핀, 커피 등을 나눠줬다.
정 씨는 연합뉴스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터뷰를 갖고 "제가 못하면 자식 3남 1녀 중 누군가가 이어서 하고, 다시 손자가 이으면 좋겠다"며 "한번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끝까지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노숙인들에게 단순히 음식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그들이 자립해 우리의 친구로서 공존할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 주고 싶다는 계획도 밝혔다.
"노숙인들은 제게 또 다른 가족입니다. 그러니 제가 뉴질랜드에서 가장 많은 가족이 있는 셈입니다."
노숙인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노숙인이 더 늘어난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는 말도 덧붙였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 가족(3남 1녀)을 부양하기도 벅찬 환경에서 그는 어떤 사유로 봉사에 나섰을까.
정 씨는 국내 한 중견기업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1993년 뉴질랜드에 이민했다. 여행 가이드를 비롯해 닥치는 대로 일했고, 23년 전부터 택시 운전을 하면서 크라이스트처치에 정착했다.
"바람이 매서운 겨울날이었어요, 택시를 몰고 라티머 광장을 지나가는 데 경찰들이 폴리스라인을 치는 걸 봤죠. 궁금해 가까이 가보니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노숙인이 쓰러져 있었어요. 죽었을 것으로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죠."
처음에는 무작정 햄버거 10개를 들고 라티머 광장으로 달려갔다. 벤치에 햄버거와 '무료'라는 팻말을 놓고 기다리자 노숙인들이 한명 두명 다가와서는 "정말 무료냐"고 묻고는 가져갔다.
햄버거가 떨어졌고, 노숙인들에게 "다음 주에 또 오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그는 12년째 그 약속을 지켜가고 있다.
"초창기 100달러(NZD·약 8만원) 정도 들었어요. 그런데 입소문이 나면서 매주 120∼150명의 급식자가 늘어나면서 150달러(약 12만원) 정도 필요합니다. 지금은 기부금이 생겨서 처음보다는 사는데 빠듯하지 않습니다."
가족과 준비하던 음식 마련과 나눔 봉사에는 현재 한인 뿐만 아니라 뉴질랜드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인, 필리핀인 등 10명 정도가 함께 하고 있다.
정 씨는 봉사 활동의 근원을 현재도 경북 청도에서 한센인을 돌보고 있는 어머니(89)의 영향이라고 믿고 있다. 27년 전부터 그들의 친구로 있는 어머니를 옆에서 보고 자라 자연스럽게 '봉사 유전자'(DNA)가 생겼다고 했다.
"세상 어디에나 노숙인들은 있어요. 흔히 그들이 불쌍하다고 여기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자 친구입니다."
노숙인 인식 변화가 우선했으면 좋겠다고 피력한 그는 최근 코로나19 경보 4단계 때 급식을 하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정 씨는 봉사 활동을 인정받아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로컬 히어로' 메달과 영국 여왕의 '퀸 서비스' 메달을 받았다.